1.3 劉基와 宋濂
<욱리자>
전체가 18장(천리마, 노반, 현표, 영구장인, 고외, 구연, 혜록, 천지지도, 성적, 우부, 천도, 목가, 공손무인, 사갈, 신선, 미호, 갱곽, 구난) 총 195항목으로 나뉨
대부분이 우언고사
‘욱리자’라는 인물이 책 전체를 관통하여 등장
→ 이야기의 주인공, 이야기 평론 등
Ⅰ.고대의 교육
1.그리스
1) 시대적 배경
그리스 사회는 도시국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폴리스는 완전히 독립된 주권 국가의 성격을 띠었으며, 종족간의 이해관계로 상호 대립되기도 하였으나 동일민족이라는 동포의식이 강하여 타종족에 대해서는 단결된 모습을 보였다. 가장 대표적인 폴리스는 스파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가 시작되었다.
왕조교체기의 문학은 조선왕조의 건국사업을 담당한 쪽과 고려를 위해 충절을 지키려는 쪽으로 노선이 분열되었는데 이를 관각 혹은 관인문학, 처사 혹은 사림문학으로 이어졌다.
건국사업파에는 정도전이 절의충절파에는 길재가 대표로 활약하였다.
서론
학생들의 교육성취에 영향을 주는 변인은 매우 다양하다. 가정환경에서부터 교사의 효과성, 지역사회와 학교의 긴밀한 관계, 학교 풍토, 재정 상태 등의 교육 행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생들은 공식적으로 또는 비공식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요인들은 모두가 독립적
인문학이라는 조선시대 사대부문학의 두 가지 방향으로서 서로 조화와 갈등의 관계를 아울러 가지며 언제나 공존했다.
건국사업파와 절의충절파에서 각기 정도전과 길재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고려 후기에 이룩한 사살과 문학의 최고 수준을 서로 다른 방행으로 이었으며, 조선
Ⅰ. 들어가며
조선조의 건국과 더불어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국시로서 고려의 불교가 신흥문학인 성리학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조선조는 성리학을 건국의 이념으로 삼고 그에 따라 제반 문물 제도를 정비해나갔다. 이는 문학에도 큰 영향을 주어 지배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성리학의 문학관은 바
<狙公失狙>-劉基
楚有養狙 狙 :猕猴。원숭이
以爲生 爲生 : (어떤 수단을) 생업으로 하다. 생활하다. 생계를 꾸려 나가다.
者,楚人謂之狙公。
초나라에 원숭이를 길러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초나라 사람들은 그를 ‘저공(원숭이 기르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旦日,必部分
우언체 산문집 《욱리자(郁離子)》가 있다. 송렴은 특히 전기문(傳記文)과 기서문(記敍文)에 뛰어나 산문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당시 조정의 제사·조회·조유·봉사 등의 의식에서 사용한 문장은 대부분 송렴이 쓴 글들이라고 한다. 그는 유가 윤리를 존중하고 주원장의 은덕을 칭송하는 글을 많이 써
우언(寓言)형식을 빌어 풍자한 소품문는 교묘히 억울한 자신의 심정을 나타낸 것이다
영주에서 십 년을 지낸 후 유종원은 다시 광서성(廣西省) 경내의 유주(柳州)로 옮겨갔고, 그의 친구 유우석 역시 파주(播州 : 지금의 귀주성(貴州省) 경내의 준의(遵義))로 옮겼다. 파주의 생활은 유주보다 더 심각하여
검거되었으나 폐결핵의 악화로 석방되었다. 1935년 김남천, 김기진과 협의하여 카프의 해산을 결정한다. 그해 8월에는 요양을 위해 마산으로 내려가 1937년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후에 여기서 만난 지하련과 재혼했다. 1937년 학예사를 대리 경영했고, 〈사해공론〉·〈인문평론〉의 편집에도 참여했다.